작업노트 Artist Statement

단단한 형태에 더러운 질감을


나는 본 것들을 늘 머리속에서 되 뇌인다. 보통은 어두운 밤에 마주친 벌레들 같이 사소한 것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있다. 단순히 부정한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감정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쉬이 외면하기에는 그것들은 내게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계속해서 되짚다 보면 어느새 대상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감각만이 남게 된다.

나는 더이상 종교가 없지만, 아주 어린시절부터 오랜 기간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녔다. 대부분의 종교는 부정한 것을 억압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억압의 과정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수행적이다. 작업에서  싫어하는 것들을 집요하고 강박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어쩌면 내게 내면화된 종교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강박성은 나를 사로잡는 그 싫은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소화하려는 내 나름의 방식일 것이다.


언제나 '부정한 것, 부정한 상황, 부정한 감정' 같은 것들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때때로 종교의 것을 연상한다. 가령 죽은 벌레 시체의 생김새에서 현란한 불교 회화를 떠올리고, 창 밖에 붙어있는 나방 무리에서 성당에 빼곡 하게 들어선 성화를 떠올린다. 나는 가장 저급한 것에서 가장 신성한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이 그 자체로 종교적이며, 또 부정하다고 생각했다. 근래의 몇 년 동안 주로 벌레를 대상으로 작업을 이어왔지만, 내 작업에서 어떤 실체적 대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벌레이든, 아니면 어떤 성화이든 간에 더 이상 이 둘은 내게서 분리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내가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분별하고 있는지 이다. 따라서 작업에 드러나는 형상들은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껍데기(Dummy)에 가깝다. 만일 벌레에서 성화를 떠올리거나 성화에서 벌레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이 도상기호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거나, 아니면 실제로 그 둘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유사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 상반된 의미의 두 조형성이 사실은 같은 곳을 향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양가성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삼아왔다. 늘 무엇을 향하는 강렬함은 그 반대급부를 수반한다. 또 어떤 강한 감정은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다스려지기도 한다. 그 두 가지 상태가 모호해지고, 둘 중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부여되는 새로운 지위에 집중하고 있다. 부정성에 대한 복잡한 태도는 곧 강박성으로 연결되고, 나는 그 강박을 작업의 질서로 드러내고 싶었다.

각 연작마다 각기 다른 소재, 그리고 그에 대한 고유의 질서들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질서는 비정형의 것들을 어떻게 정형화하는 지에 관한 것들이다. 기괴한 유기체를 일정한 방식으로 배열하여 몸으로 구성하거나, 그 위로 종교화에서 볼 법한 광배나 도상들을 배치시킨다. 또 연작의 구성 자체를 상호 연결된 집단으로 구성하여 각각에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질서의 방법은 내가 처음 강박성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종교의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단단한 형태에 더러운 질감을 부여하는 .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들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부정성에 대한 태도를 조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에서 양가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조형의 질서를 구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