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Artist Statement

모조교의



   나의 부모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그래서 집 안에는 온통 그와 관련된 성물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십자가는 나를 늘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때때로 괴물 같은 환영으로 다가왔으며, 그것이 원래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Dummy> 연작은 나를 속박하던 그 종교적 도상으로부터 시작했다. 유사한 이미지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원래의 의미를 망각해버린 텅 빈 껍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보는 아주 저급한 것들에 그 껍질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더럽거나 무서운 것들을 마주할 때면 단숨에 혐오감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을 떨쳐내려 애쓴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어떤 강렬함은 때때로 완전히 정반대의 감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초기 작업은 이러한 양가성의 근원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나는 이 양가적인 상태가 모호해지고, 둘 중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 만일 벌레에서 성화를 떠올리거나 성화에서 벌레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내가 그 도상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거나, 아니면 실제로 그 둘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유사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 상반된 의미의 두 조형성이 사실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교란이 일어나는 경계에서 부여되는 새로운 지위에 집중하고 싶었다. 

   각 연작마다 각기 다른 소재, 그리고 그에 대한 고유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질서는 비정형의 것들을 어떻게 정형화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주로 불교의 교리를 조형의 질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백팔번뇌, 구상도, 십우도 등 불교에서 전해지는 수와 관련된 교리들을 토대로 벌레, 내장 등에 대한 혐오감을 통제하는 질서를 구상했고, 때로는 고전 불화 그 자체가 작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작업을 거듭하며, 그 안에서 매번 새로운 질서들이 대두되면서 부터 점차 강박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 질서들은 연작을 좀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구성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어느새 그것은 작업을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고, 동시에 억압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부정성으로 다가왔고, 부정한 것을 부정한 방식으로 다룬다는 묘한 작업의 태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쩌면 부정성을 정제된 부정의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내겐 너무나 익숙한 종교의 방식이기도 했다.


   <Dummy>연작을 108점으로 마무리하면서, 나는 화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 간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습관들을 완전히 규율화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그 체계를 몸에 빗대어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누어 세분화하고, 이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새로운 몸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작업에서 드러나는 나의 강박성을 스스로 통제하고, 그것을 다시 그리기의 방식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다시 108점으로 계획 중인 이 작업들은 초기에는 더미와 유사하지만 점차 스스로의 질서를 확립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질서는 한계를 스스로 규정지음으로써, 위반의 가능성을 마련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작업 안에서 스스로 세운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위반하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위반의 순간에는 묘한 쾌감이 동반한다. 위반과 순응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부정성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라는 작업의 시작점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2024년 5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