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쌍둥이 Triplet (2021)

 

Dummy No.60, 2021, 종이에 먹 Ink on paper, 200x103cm

Dummy No.61, 2021, 종이에 안료 Pigment on paper, 200x103cm

Dummy No.62, 2021, 종이에 먹 Ink on paper, 200x103cm



돈벌레는 소위 익충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적부터 ‘돈벌레를 죽이면 복이 달아난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나 막상 돈벌레를 대면할 때에 그 끔찍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번뇌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관해 경험하는 세 가지의 마음 상태(중립, 긍정, 부정)를 말한다. 나는 종종 벌레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보통은 매우 혐오스럽지만, 때때로 그들의 생김새는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특히 어두운 밤 닿을 수 없는 천장에 출몰한 벌레들을 마주하는 순간은, 단순한 혐오나 공포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번뇌’의 개념을 대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조형적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 작업들은 돈벌레에 관한 세 가지 시선을 담고 있다. 사심없이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집요하게 관찰하고(중립), 그 몸의 복잡한 구조에 매료되어 그것을 신격화하기라도 하듯, 불교 미술의 것처럼 흉내도 내본다(긍정). 다른 한편으로는 차마 제대로 대면조차 할 수 없는 돈벌레의 기다란 몸과 수많은 다리들의 끔찍함을, 어떤 먼지 더미나 털뭉치로 대신하기도 한다(부정).
그러나 좋고 나쁨의 분별은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은 솜털들을 집요하게 그리며 희열을 느끼고, 패턴화 된 몸을 반복해 그리는 것에 심한 강박과 울렁증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에는 분명해 보였던 것들이 작업의 과정에서 점차 모호해진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것들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트랜스포지션> 전시전경, 2021, 아트선재센터(사진 : 아트선재센터 제공, 양이언 촬영)